2008년 02월 13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아주.

다 태워먹고 나니 '정말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철의 장막을 쳐버린다고 한다.
그게 가린다고 가려지냐.
▶ 아예 이런걸로 가리지!?
도심 한가운데 뭐 공사라도 하는 듯이 철막이 죽 쳐져있는게 더 이상해보일거 같다.
그냥 경계라인만 깔고 두고두고 놔둘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자랑스러운 반만년 역사'에 오점이 생긴다고 생각하나?
잘한거든 못한거든,
뭘 해먹었든 지져먹고 볶아먹고 구워먹고 태워먹든간에,
그 자국 하나하나가 기록인것을.
사람들 눈에 밟히고,
자꾸 거슬리게 놔둬서
뇌리에 박히게 하는 것이 역사인데,
나치 시절을 듣기 싫도록 가르치던 독일과
대동아공영을 꿈꾸던 일제의 패전 스토리는 슬그머니 감추는 일본 교육을 놓고
그렇게 삽질한거 가리기에만 안달이 난 우리가 일본을 탓할 자격이 있나?
가리지 말자.
대충대충 겉으로만 어떻게 해놓고 '에이 별 일 없을껴' 하고
그저 하루하루 넘기다가 결국 호되게 당한거라고 생각해야지 않겠나.
(호되게 당한 것도 한두번은 아니지만서도...)
논조도 여전히 맘에 안들지만 말의 뼈는 그래도 오랜만에 내 생각과 비슷한 거 같아서.
차라리 70년대식으로 '남한 사회의 동요를 유발하기 위해 남파 간첩이 일으킨 일'이라거나, 외국 테러 전문 집단이 밀입국해서 벌인 일이었다면, 이렇게 허망하고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완전히 불에 타 버렸다는 소식은 '벼락'이었지만, 범인이 창경궁 방화를 시도한 적이 있는 70대였다는 사실은 '치욕'이다. 그가 숭례문을 태우는 데는 휴대용 사다리 하나, 시너 1.5ℓ, 그리고 라이터 하나면 충분했다. 사전 답사 2회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라고 말하기엔 낯뜨겁다. 반(半)정신병자 한 명이 마음먹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맘 놓고 불을 내고 국보(國寶)를 폐허로 만들 수 있는 게 우리 수준이다.
"촛불 시위로 일어서더니 큰 불로 망한다"며 지금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도 있고, "새 대통령이 잘될 징조인지, 못될 징조인지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건 어떤 대통령의 '사주팔자' 문제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위기관리 수준'의 지표일 뿐이다.
193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 직원은 고객면담을 통해 노동 재해가 1건 발생하면, 같은 이유로 경상을 입은 사람이 29명이고, 사고를 당할 뻔한 사람은 300명이었다는 '1:29:300' 원칙을 밝혀냈다. 이를 그의 성을 따 '하인리히(Heinrich) 법칙'이라고 부른다. 드러난 사고 한 건은 잠재적 사고 329건의 '외피'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남대문 참사'는 단적으로는, 수많은 '엉터리' 가운데 가장 큰 엉터리에 불과하다.
엉터리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그 엉터리를 또 다른 엉터리로 가리는 데도 능숙하다. 화재 다음 날, 화재 현장에는 6m 높이의 임시 가림막이 설치됐던 데 이어, 13일에는 15m짜리 이중 가림막이 설치될 예정이다. 더 '확실히' 안 보이게 됐다. 민첩하기도 하다.
하지만 뉴욕시는 9·11 테러가 일어난 '그라운드 제로'에 철책만을 두르고 관람대까지 만들어 그 참혹한 현장을 7년째 사람들이 지켜보게 하고 있다. '테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웅변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숭례문 현장은 그런 고급스러운 교훈의 장소는 될 수 없다. 그곳은 차라리 진정한 치욕을 가르치는 장소로 전시되어야 한다. 남들과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 수준이 고작 이 정도"라는 걸 고백하는 '참회의 증언서'가 되어야 한다.
성급한 사람들은 또 벌써 무너진 숭례문의 복원을 얘기한다. 복원은 국민 성금으로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그러나 아직은 복원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 국가 예산이나, 국민 성금이나 국민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복원을 얘기하는 밑바탕에는 눈앞의 참상을 어서어서 덮어 버리고 싶은 의식, 도피 심리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이 정부는 유난히 '복원'을 좋아했다. 있는 것이나 잘 보존하지, 끊임없이 멀쩡히 잘 있는 것의 현상 변경을 시도했고, 맘에 안 드는 것은 허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잘 있는 광화문 현판을 바꾸겠다고 설치다가 반대에 부딪히자 아예 광화문 자체를 복원하겠다며 허물고 다시 짓는 중이다. 이 와중에 광화문에서 1.7㎞밖에 안 떨어진 지점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이제 정치색을 벗어 던진 '진짜' 복원을 하게 됐다. 아이러니다.
반성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장작 더미에 누워 쓸개를 핥는 고통을 겪어야 차마 돌이키기 부끄러운 사고와 그로 인한 굴욕감을 벗어 던질 수 있다. 지금은 숭례문 폐허의 가림막을 걷어 치우고, 깊숙한 곳부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시간이다. 정부도 '복원 판타지'로 국민들 상처에 '반창고'만 붙이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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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2/13 01:29 | 날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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